이것은 사랑인가 광기인가.
소설을 잘 안 읽는 내가 2년만에 소설을 읽었다. 그 소설이 이 책이라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어가 잠든 집>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딸, 미즈호의 장기기증 여부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뇌사’란 뇌기능은 정지되었으나 심정지는 오지 않은 사람. 즉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보다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한 문제인 것이었다. 과연 어디까지를 뇌사로 봐야하며 죽음으로, 생으로 봐야하는지 철학적인 질문을 이야기속에 담는다. 그 철학적 질문은 과학적 논의보다 앞 서 있었다.
미즈호는 뇌 전체가 기능을 멈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부분들은 살아있었다. 그런데도 뇌사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렇다면 생명이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하고 싶지만 ‘뇌사’는 장기기증이 가능한 상태’에 필수요건이며 장기기증의 절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라 한다. 즉 뇌기능의 정지를 인간의 죽음으로 볼 수 있는가? 라는 철학적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나는 뇌는 정지했지만 몸은 살아있기에 생명으로 본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뇌사인경우에 다시 깨어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며 기간은 길어질지 몰라도 결국 심정지로 이어진다고 한다. 죽음이 정해져있다면 그것은 시체가 되는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뇌사한 몸을 생명이라 생각했느냐, 숨쉬기 몸이 실존하기 때문이었다. 영혼은 없지만 몸은 살아있기에 하지만 그것도 생명유지장치로써 실현하는 것이고 사실상 자발호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숨쉬는 시체일 수도 있겠다. 파고들면 들수록 참 어렵다.
미즈호를 시체라고 보는 사람들에게 내 딸은 살아있는 생명이라 증언하는 대목은 감탄스럽고도 동시에 처절하기까지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물 내면의 세세한 부분까지 묘사하는 작가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느 인물 할 것 없이 몰입되고 설득당한다. 그런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은 절박하겠지만 세상은 미즈호를 두고 생명으로 여기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인물들의 내면은 이끌되 작가 본인이 어느 의견에 편향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꽤나 밸런스가 잘 갖춰진 소설이라 느껴졌다. 아니 애초에 어느 것이 맞다 라는 것을 논의하기보다 여러형태의 삶과 함께 우리는 결국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사실 소설은 그저 재미를 위해 읽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무런 지적요소가 없는 책을 왜읽는 걸까 라고,, 하,,, 진짜 내가 너무 부끄럽다. 이 책을 읽고 비로소 문학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말이 무슨말인지 알 것 같았다. 뇌사면 뇌사인거지 라고 지극히 단순히 생각했던 내게 ‘뇌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뒤섞여 충격적일 정도로 생경한 논의로 다가왔다.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 두서가 산만한 독후감이 참 오랜만이고 오히려 비문학 보다도 심도 있는 고찰을 할 수 있었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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